허먼 멜빌
Herman Melville, 1819 – 1891
한눈에
뉴욕의 부유한 상인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열두 살에 아버지의 파산과 죽음을 겪었다. 선원·포경선원으로 바다를 떠돌며 쓴 모험담 『타이피』(1846)로 일약 유명해졌고, 『모비 딕』(1851)으로 야심의 정점에 올랐지만 당대에는 외면받았다. 이후 잡지 단편, 시, 세관 검사관 생활로 이어진 삶을 살다 거의 잊힌 채 세상을 떠났다. 1919년 탄생 100주년을 계기로 재평가가 시작되어 지금은 미국 문학의 중심에 선 작가다.
삶의 연대기
| 1819 | 8월 1일 뉴욕에서 8남매 중 셋째로 태어남. 아버지 앨런 멜빌은 프랑스 직물을 수입하던 상인, 어머니 마리아 간스부르트는 엄격한 네덜란드 개혁교회 집안 출신. |
| 1830–32 | 아버지가 빚에 몰려 가족이 올버니로 이주. 1832년 1월 아버지가 세상을 뜸. 멜빌은 얼마 후 삼촌의 주선으로 은행 점원으로 일하기 시작함. |
| 1837–38 | 공황으로 형 간스부르트가 파산. 멜빌은 농장 일, 시골 학교 교사 등을 전전함. |
| 1839–44 | 상선 세인트로런스호의 수습 선원(1839), 포경선 어쿠시넷호 승선(1841). 마르키즈 제도 누쿠히바에서 탈주해 섬 사람들과 지냄(1842). 타히티 등을 거쳐 미 해군 군함에서 근무한 뒤 1844년 보스턴으로 돌아옴. |
| 1846–47 | 『타이피』(1846), 『오무』(1847)가 베스트셀러가 됨. 8월 매사추세츠 대법원장 레뮤얼 쇼의 딸 엘리자베스와 결혼. |
| 1849–50 | 『마디』는 외면받고, 『레드번』『화이트재킷』은 평은 괜찮았으나 판매가 부진. 1850년 피츠필드의 농장 ‘애로헤드’를 장인에게 빌린 돈으로 매입. 이웃의 너새니얼 호손과 교류 시작. |
| 1851 | 『모비 딕』 출간(영국 10월, 미국 11월). 호손에게 헌정. 당대 반응은 차가웠다. |
| 1852 | 『피에르』 출간. 혹평, 「허먼 멜빌 미쳤다」라는 기사까지 나옴. |
| 1853–56 | 생계를 위해 잡지에 단편 발표. 「필경사 바틀비」(1853), 「베니토 세레노」 등. 1856년 단편집 『피아자 이야기』. |
| 1856–57 | 유럽·성지 여행(1856.10–1857.5). 영국에서 호손과 재회. 마지막 장편 『사기꾼』(1857). |
| 1857–60 | 생활비를 위해 순회강연. 청중 반응은 좋지 않았다. |
| 1863–66 | 뉴욕으로 이사. 시집 『전투 소품』(1866). 같은 해 뉴욕 세관 검사관이 되어 19년간 근무. |
| 1867 | 맏아들 맬컴이 18세에 총기 사고로 숨짐. |
| 1876 | 장편 서사시 『클라렐』 출간. 판매는 참담했다. |
| 1885–86 | 세관을 퇴직(1885.12). 이듬해 둘째 아들 스탠윅스가 결핵으로 숨짐. |
| 1891 | 9월 28일 사망. 뉴욕 타임스 부고가 『모비 딕』을 ‘모비 딕(Mobie Dick)’으로 잘못 적은 일화로 유명하다. |
| 1919–24 | 탄생 100주년을 계기로 멜빌 재평가(리바이벌). 유고 『빌리 버드』가 1924년 출간됨. |
대표작
- 『타이피』(1846)·『오무』(1847) — 남태평양 체험을 바탕으로 한 모험담. 생전에 가장 많이 팔린 책들이다.
- 『레드번』(1849)·『화이트재킷』(1850) — 상선과 군함 생활을 그린 소설.
- 『모비 딕』(1851) — 흰 고래를 쫓는 에이해브 선장의 이야기. 1년 반 가까이 걸려 쓴, 미국 작가가 구상한 ‘가장 야심 찬 책’으로 평가된다. 지금은 ‘위대한 미국 소설’로 꼽힌다.
- 『피에르』(1852) — 심리극에 가까운 야심작이지만 문체가 난해해 혹평받았다.
- 단편 「필경사 바틀비」(1853), 「베니토 세레노」, 「엔칸타다스」, 「피아자」 — 『피아자 이야기』(1856)로 묶임.
- 『사기꾼』(1857) — 사기와 정직, 가면극을 다룬 마지막 장편. 훗날 높이 평가받는다.
- 시 — 『전투 소품』(1866), 『클라렐』(1876) 등. 남북전쟁과 신앙의 문제를 시로 다뤘다.
- 『빌리 버드』 — 미완 상태로 남은 원고. 1924년에야 출간되어 호평받았다.
바틀비가 나온 자리: 1850년대 초의 멜빌
『모비 딕』을 쓰던 시기의 멜빌은 호손과 가까워지며 이 책을 고래잡이 이야기에서 우화적인 대작으로 키웠다. 하지만 책이 팔리지 않았고, 이어 쓴 『피에르』는 오히려 더 심한 혹평을 받았다. 『모비 딕』 수입은 영국 선인세와 미국 인세를 합쳐 약 1,260달러로, 이전 다섯 권 중 어느 것보다도 100달러 넘게 적었다.
한편 농장 매입, 늘어난 가족, 장인에게서 빌린 돈이 그의 어깨를 눌렀다. 1853년에는 『이스라엘 포터』조차 단행본 출판사를 찾지 못해 잡지에 연재했다. 그해 11월 『퍼트넘스 먼슬리』에 이름 없이 실린 「바틀비」가 바로 이 시기의 글이다. 이 작품이 이 곤경에 대한 작가의 감정을 담은 것이라고 읽는 학자들이 있지만, 기록으로 확정된 사실은 아니다. 이 문제는 해설·평론 페이지에서 따로 다룬다.
우연이든 아니든, 열두 살에 은행 점원이 되어 필사와 장부 일을 하던 소년 멜빌의 이력은 ‘베끼는 일로 먹고사는 사람’이라는 인물과 겹친다.
글쓰기의 특징
- 가장 큰 원천은 성경, 셰익스피어, 밀턴이다. 직접 인용은 많지 않고 문장에 스며든 울림과 변주로 쓴 경우가 대부분이다.
- 1849년 큰 활자로 인쇄된 셰익스피어 전집을 구해 읽은 것이 『모비 딕』의 문체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 비평가 F. O. 매시슨의 평가다. 에이해브의 연설이 무운시에 가까운 것도 그래서다.
- 『모비 딕』의 풍부하고 넘치는 문체에 비해, 『피에르』 이후의 글은 더 절제되고 ‘억눌린’ 느낌을 준다는 지적이 있다(워너 버스호프). 「바틀비」의 건조한 문장은 이 흐름 위에 있다.
사후 평가
1891년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대중은 그를 거의 잊고 있었다. 1919년 탄생 100주년 즈음 재평가가 시작되었고, 『모비 딕』은 미국 문학의 정전이 되었다. 1982년 이후 ‘라이브러리 오브 아메리카’가 그의 작품을 순차적으로 펴내며 미국 문화 속 그의 중심적 위치를 인정했다. 근래에는 「바틀비」가 『모비 딕』에 맞먹을 만큼 유명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출처
- Wikipedia: Herman Melville — 생애, 작품 연보, 문체 논의(매시슨, 버스호프 등)
- Wikipedia: Moby-Dick — 수입과 초기 반응
- Wikipedia: Pierre; or, The Ambiguities
- 성민엽, 중앙일보 칼럼 (2026. 3. 20.) — 멜빌 재평가와 「바틀비」의 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