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경사 바틀비 — 영한 대역
1
I can see that figure now—pallidly neat, pitiably respectable, incurably forlorn! It was Bartleby. After a few words touching his qualifications, I engaged him, glad to have among my corps of copyists a man of so singularly sedate an aspect, which I thought might operate beneficially upon the flighty temper of Turkey, and the fiery one of Nippers.
At first Bartleby did an extraordinary quantity of writing. As if long famishing for something to copy, he seemed to gorge himself on my documents. There was no pause for digestion. He ran a day and night line, copying by sun-light and by candle-light. I should have been quite delighted with his application, had he been cheerfully industrious. But he wrote on silently, palely, mechanically.
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핼쑥한 단정함, 안쓰러운 품위,
치유할 수 없이 도저한 고독! 그가 바틀비였다.
두어 개의 자격 요건에 관해 질문을 한 후, 나는 그를 고용했다.
나의 필경사 군단에 그처럼 침착한 면모의 직원을 두게 된 것에 기뻐하면서.
내 딴엔 그의 그런 면모가 터키의 변덕스러운 기질과,
니퍼즈의 불같은 성질을 이로운 쪽으로 상쇄해주리라 생각했다.
처음에 바틀비는 엄청난 분량의 필사를 했다.
마치 필사에 오랫동안 굶주려 있던 사람처럼,
그는 내 문서들을 게걸스레 먹어치우는 것 같았다.
하물며 소화를 하려고 쉬는 일조차 없었다.
그는 낮엔 햇빛 속에서, 밤엔 촛불을 비치며 밤낮없이 일했다.
그가 활기차게 일했다면야, 그의 근면한 태도에 나는 당연히 기뻤을 것이다.
하지만 바틀비는 말없이, 핼쑥한 모습으로, 기계적으로 필사를 했다.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창백하리만치 단정하고, 딱할 만큼 점잖으며, 어찌해 볼 수 없이 쓸쓸한 사람! 바로 바틀비였다. 자격에 관해 몇 마디 묻고 나서 그를 채용했는데, 필경사들 틈에 이토록 유난히 차분한 인상의 사람을 두게 되어 기뻤다. 그의 차분함이 변덕스러운 터키와 불같은 니퍼즈의 기질에 좋은 영향을 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처음에 바틀비는 놀랄 만큼 많은 양을 필사했다. 오래도록 베낄 거리에 굶주렸던 사람처럼 내 서류를 게걸스레 먹어 치우는 듯했다. 소화할 틈도 두지 않았다. 낮에는 햇빛으로, 밤에는 촛불로 밤낮없이 베꼈다. 그가 즐거운 마음으로 부지런했다면 그 열성이 무척 흐뭇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말없이, 창백하게, 기계처럼 써 내려갈 뿐이었다.
I called to him, rapidly stating what it was I wanted him to do—namely, to examine a small paper with me. Imagine my surprise, nay, my consternation, when without moving from his privacy, Bartleby in a singularly mild, firm voice, replied,
“I would prefer not to.”
I sat awhile in perfect silence, rallying my stunned faculties. Immediately it occurred to me that my ears had deceived me, or Bartleby had entirely misunderstood my meaning. I repeated my request in the clearest tone I could assume. But in quite as clear a one came the previous reply,
“I would prefer not to.”
“Prefer not to,” echoed I, rising in high excitement, and crossing the room with a stride. “What do you mean? Are you moon-struck? I want you to help me compare this sheet here—take it,” and I thrust it towards him.
"I would prefer not to,” said he.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그것이 바틀비의 대답이었다. 나는 어리벙벙해진 정신을 수습하며, 찍 소리도 하지 못 한 채 한동안 그대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내 귀가 이상해졌거나, 바틀비가 내 뜻을 완전히 착각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해서 나는 가능한 가장 선명한 어조로 내 부탁을 되풀이해 말했다. 그러나 전과 다름없이 분명한 어조로 그는 방금 전에 한 말을 다시 했다.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나는 매우 흥분한 나머지 자리에서 일어서서, 사무실을 가로질러가며 그 말을 다시 되풀이했다.
“그렇게 안 하고 싶다니, 자네 미쳤어? 내가 여기 이 서류를 비교하게 도와달라고. 자, 이거 받아!“
나는 그 서류를 그의 쪽으로 내밀었다.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나는 그를 불러 부탁할 일을 빠르게 말했다. 작은 서류 한 장을 나와 함께 대조해 보자는 것이었다. 바틀비가 자기 칸막이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유난히 온화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을 때,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니 얼마나 아연실색했는지 상상해 보라.
“그러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나는 놀란 정신을 수습하며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곧 내 귀가 잘못 들었거나 바틀비가 내 뜻을 완전히 오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낼 수 있는 가장 또렷한 어조로 부탁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똑같이 또렷한 어조로 아까와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그러지 않는 편이 좋겠다’라고?” 나는 크게 흥분해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방을 가로지르며 되뇌었다. “무슨 소리야? 달에라도 홀렸나? 이 서류를 같이 대조해 달라는 걸세. 자, 받게.” 그러면서 서류를 그에게 들이밀었다.
“그러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그가 말했다.
I looked at him steadfastly. His face was leanly composed; his gray eye dimly calm. Not a wrinkle of agitation rippled him. Had there been the least uneasiness, anger, impatience or impertinence in his manner; in other words, had there been any thing ordinarily human about him, doubtless I should have violently dismissed him from the premises. But as it was, I should have as soon thought of turning my pale plaster-of-paris bust of Cicero out of doors.
I stood gazing at him awhile, as he went on with his own writing, and then reseated myself at my desk. This is very strange, thought I. What had one best do? But my business hurried me. I concluded to forget the matter for the present, reserving it for my future leisure. So calling Nippers from the other room, the paper was speedily examined.
나는 한동안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피골이 상접한 그의 얼굴은 침착했고, 회색 눈동자는 흐릿하니 고요했다. 일말의 동요하는 기색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그의 태도에 불안이나 분노, 초조함이나 무례함이 조금이라도 비쳤다면, 다시 말해서, 그에게서 한 치라도 평범한 인간의 면모가 엿보였다면, 나는 단언컨대 그를 회사 밖으로 걷어차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키케로 석고 흉상을 문밖에 내놓겠다고 생각하는 편이 나을 지경이었다.
필사를 계속하는 바틀비를 잠시 동안 노려보다가 나는 내 책상에 돌아와 앉았다.
정말 희한한 일이야, 나는 생각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으려나? 그러나 내게도 서둘러야 할 업무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문제는 당분간 보류했다가 나중에 한가할 때 생각하는 것으로 일단락지었다. 그래서 다른 방에서 일하던 니퍼즈를 불러서 신속히 서류를 검토했다.
나는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야윈 얼굴은 차분했고 잿빛 눈은 흐릿하게 고요했다. 동요의 주름 하나 일지 않았다. 그의 태도에 불안이나 분노, 조급함이나 무례함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다시 말해 그에게 평범한 인간다운 구석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나는 분명 그를 사무실에서 거칠게 내쫓았을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창백한 석고 키케로 흉상을 문밖으로 내놓을 생각을 하는 편이 차라리 쉬웠을 것이다.
그가 제 필사를 계속하는 동안 나는 잠시 그를 바라보고 서 있다가 내 책상으로 돌아와 앉았다. 참 이상한 일이야, 하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일까? 하지만 일이 급했다. 나는 당장은 이 일을 잊고 나중에 한가할 때로 미루기로 했다. 그래서 옆방의 니퍼즈를 불러 서류를 서둘러 검토했다.
“Bartleby! quick, I am waiting.” I heard a slow scrape of his chair legs on the uncarpeted floor, and soon he appeared standing at the entrance of his hermitage.
"What is wanted?” said he mildly. “The copies, the copies,” said I hurriedly. “We are going to examine them. There” —and I held towards him the fourth quadruplicate.
“I would prefer not to,” he said, and gently disappeared behind the screen. For a few moments I was turned into a pillar of salt, standing at the head of my seated column of clerks. Recovering myself, I advanced towards the screen, and demanded the reason for such extraordinary conduct. “Why do you refuse?” "I would prefer not to.”
With any other man I should have flown outright into a dreadful passion, scorned all further words, and thrust him ignominiously from my presence. But there was something about Bartleby that not only strangely disarmed me, but in a wonderful manner touched and disconcerted me. I began to reason with him. “These are your own copies we are about to examine. It is labor saving to you, because one examination will answer for your four papers. It is common usage. Every copyist is bound to help examine his copy. Is it not so? Will you not speak? Answer!”
“I prefer not to,”
“자, 바틀비! 빨리 와, 기다리고 있잖아.”
"무슨 일이십니까?“
“필사본, 이제부터 우린 필사본을 검토해야 해.
자, 자네는 여기, 네 번째 사본을 검토해 줘.“
"안 하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바틀비는 그렇게 말하더니 칸막이 뒤쪽으로 조용히 사라졌다. 잠시 동안, 나는 소금기둥으로 변해서, 줄지어 앉은 직원들 맨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나는 그가 있는 칸막이 쪽으로 가서, 그런 터무니없는 행동을 하는 이유를 물었다.
“왜 거절하는 거지.“
"안 하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나는 당장에 머리끝까지 역정을 내면서, 더는 말할 것도 없이, 면전에서 굴욕적으로 쫓아냈을 것이다. 그러나 바틀비에게는 나를 묘하게 무장해제시킬 뿐만 아니라, 놀라운 태도로 날 감동시키고 쩔쩔매게 하는 데가 있었다.
나는 그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지금 다름 아닌 자네의 필사본을 검토하려는 거야. 한 번 검토하면 네 개의 사본을 처리하는 셈이니까, 자네 일을 덜어주는 거라고. 이건 통상적인 관례야. 무릇 필경사라면 자기 필사본을 검토하지 않으면 안 돼. 안 그래? 왜 꿀 먹은 벙어리지? 대답 좀 해!“
"안 하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바틀비! 어서, 기다리고 있네.” 카펫도 깔리지 않은 바닥에서 의자 다리가 느릿하게 긁히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그가 은둔처 입구에 서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그가 온순하게 말했다. “사본, 사본 말일세.” 내가 서둘러 말했다. “지금 대조할 걸세. 자, 이게 네 번째 사본이네.” 하며 내밀었다.
“그러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는 칸막이 뒤로 조용히 사라졌다. 나는 한동안 앉아 있는 직원들의 줄 맨 앞에서 소금 기둥이 되어 서 있었다. 정신을 차린 뒤 칸막이 쪽으로 다가가 이런 괴이한 행동의 까닭을 따졌다. “왜 거절하는 건가?” “그러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나는 당장 불같이 화를 내고, 더 말할 것도 없이 그를 치욕스럽게 내 앞에서 쫓아냈을 것이다. 그러나 바틀비에게는 묘하게 나를 무장해제시킬 뿐 아니라, 놀랍게도 내 마음을 건드리고 당황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나는 그를 이치로 설득하기 시작했다. “지금 대조하려는 건 자네가 직접 쓴 사본일세. 한 번 대조하면 네 통이 한꺼번에 해결되니 자네 수고를 덜어 주는 거야. 이건 관례일세. 필경사라면 누구나 자기 사본의 대조를 도와야 하네. 안 그런가? 말을 않을 텐가? 대답하게!”
“그러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He is useful to me. I can get along with him. If I turn him away, the chances are he will fall in with some less indulgent employer, and then he will be rudely treated, and perhaps driven forth miserably to starve. Yes. Here I can cheaply purchase a delicious self-approval.
To befriend Bartleby; to humor him in his strange willfulness, will cost me little or nothing, while I lay up in my soul what will eventually prove a sweet morsel for my conscience. But this mood was not invariable with me. The passiveness of Bartleby sometimes irritated me. I felt strangely goaded on to encounter him in new opposition, to elicit some angry spark from him answerable to my own.
불쌍한 놈! 사실 저 놈이 해를 끼치려는 의도는 없잖아?
건방지게 굴려는 티도 안 나고. 놈의 얼굴을 봐.
저 이상한 짓이 본의가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어.
그래, 쓸 만한 놈이야. 난 놈과 잘 지낼 수 있어.
저 놈을 내쫓으면, 십중팔구 놈은 나보다 까다로운
고용주한테 걸려들어, 구박만 받다가 비참하게 쫓겨날 거야.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굶어 죽겠지.
그래, 여기서 난 달콤한 자기긍정을 싼 값에 살 수 있을 거야.
바틀비의 친구가 되는 거야.
놈의 기이한 고집을 너그러이 봐 주더라도,
내가 손해를 볼 건 하나도 없어.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내 양심에게 맛좋은 양식이 될 것을
내 영혼 속에 쌓게 되는 거지.
그러나 내가 늘 이런 식으로만 생각했던 건 아니다.
바틀비의 수동성이 때로 짜증이 났다.
나는 그와 새로운 적대관계로 맞서는 것으로,
내 분노의 불꽃과 똑같은 불꽃을 그에게서
이끌어내고 싶은 이상한 충동을 느꼈다.
저 친구는 내게 쓸모가 있다. 같이 지낼 만하다. 내쫓으면 십중팔구 이만큼 너그럽지 못한 고용주를 만나 푸대접을 받고, 어쩌면 비참하게 쫓겨나 굶게 될 것이다. 그래, 여기서 나는 달콤한 자기 긍정을 싼값에 살 수 있다.
바틀비의 벗이 되어 주는 것, 그의 기이한 고집을 받아 주는 것은 내게 아무 손해도 되지 않거나 거의 되지 않으면서, 결국 내 양심에 달콤한 한입거리가 될 무언가를 영혼에 쌓아 주는 일이다. 그러나 이런 마음이 늘 한결같지는 않았다. 바틀비의 수동성이 때로 나를 짜증 나게 했다. 나는 그에게 새로이 맞서 보고 싶은, 내 분노에 걸맞은 성난 불꽃을 그에게서 끌어내 보고 싶은 묘한 충동에 몰렸다.
2
“Bartleby,” said I, “when those papers are all copied, I will compare them with you.”
“I would prefer not to.”
“How? Surely you do not mean to persist in that mulish vagary?”
No answer. I threw open the folding-doors near by, and turning upon Turkey and Nippers, exclaimed in an excited manner—“He says, a second time, he won't examine his papers. What do you think of it, Turkey?”
It was afternoon, be it remembered. Turkey sat glowing like a brass boiler, his bald head steaming, his hands reeling among his blotted papers.
"Think of it?” roared Turkey; “I think I'll just step behind his screen, and black his eyes for him!”
So saying, Turkey rose to his feet and threw his arms into a pugilistic position. He was hurrying away to make good his promise, when I detained him, alarmed at the effect of incautiously rousing Turkey's combativeness after dinner.
“Sit down, Turkey,” said I, “and hear what Nippers has to say. What do you think of it, Nippers? Would I not be justified in immediately dismissing Bartleby?”
“바틀비, 그 서류를 다 필사한 다음, 나와 함께 대조해 보자고.“
“안 하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뭐? 이봐, 자네 설마 그런 고집불통의 짓거리를 끝까지 밀고나갈 생각은 아니겠지?“
바틀비는 대답이 없었다. 나는 터키와 니퍼즈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바틀비가 두 번째로 자기 서류를 검토하지 않겠다는군!
터키, 이걸 어떻게 생각하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때가 오후였다는 사실이다. 터키는 마치 놋쇠 보일러처럼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그의 벗겨진 머리에선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고 있었으며, 그의 두 손은 얼룩진 서류들 속에서 헛돌고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고요? 제가 선생님이라면 당장 놈의 칸막이로 들어가서,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도록 패 줄 거예요!“
그렇게 말한 터키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권투선수처럼 두 팔을 휘두르는 것이었다. 뿐인가, 자기 약속을 지키려고, 서둘러 바틀비한테 가려했다. 나는 저녁 식사 이후, 호전적이 되는 터키의 성질을 경솔하게 자극한 결과에 놀라서 그를 만류했다.
"앉아, 터키, 그리고 니퍼즈 의견을 들어 보자고. 니퍼즈, 자넨 어떻게 생각하지? 내가 바틀비를 이 자리에서 해고해도 무리는 아니겠지?“
“바틀비,” 내가 말했다. “이 서류를 다 베끼고 나면 자네와 함께 대조하겠네.”
“그러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뭐라고? 설마 그 고집불통 같은 변덕을 끝까지 밀고 나갈 생각은 아니겠지?”
대답이 없었다. 나는 가까운 접이문을 활짝 열고 터키와 니퍼즈를 향해 흥분해서 외쳤다. “이 친구가 자기 서류를 대조하지 않겠다고 두 번째로 말했네. 터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기억해 두시라, 때는 오후였다. 터키는 놋쇠 보일러처럼 벌겋게 달아올라 앉아 있었고, 벗어진 머리에서는 김이 올랐으며, 두 손은 얼룩진 서류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헤매고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고요?” 터키가 고함쳤다. “제가 그 칸막이 뒤로 가서 눈탱이를 밤탱이로 만들어 놓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터키는 벌떡 일어나 권투 자세로 팔을 들었다. 그는 약속을 지키러 서둘러 나서려 했고, 나는 점심 뒤의 터키의 호전성을 무심코 건드린 결과에 놀라 그를 붙들었다.
“앉게, 터키.” 내가 말했다. “니퍼즈의 말도 들어 보세. 니퍼즈,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내가 지금 당장 바틀비를 해고한다 해도 부당하지 않겠지?”
“Excuse me, that is for you to decide, sir. I think his conduct quite unusual, and indeed unjust, as regards Turkey and myself. But it may only be a passing whim.”
“Ah,” exclaimed I, “you have strangely changed your mind then—you speak very gently of him now.”
“All beer,” cried Turkey; “gentleness is effects of beer—Nippers and I dined together to-day. You see how gentle I am, sir. Shall I go and black his eyes?”
“You refer to Bartleby, I suppose. No, not to-day, Turkey,” I replied; “pray, put up your fists.”
I closed the doors, and again advanced towards Bartleby. I felt additional incentives tempting me to my fate. I burned to be rebelled against again. I remembered that Bartleby never left the office.
"미안하지만, 선생님, 그건 선생님이 결정하실 일입니다. 전 그의 행위가 참으로 유별난데다가, 터키와 제 자신과 비교해볼 때,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냥 일시적인 변덕일 수도 있겠지요.“
“아! 그래? 자네 좀 이상한데? 생각이 바뀐 것 같으니?
이젠 그에 대해서 아주 점잖게 말하는데?“
터키가 다시 일어나 소리쳤다.
“이게 다 맥주 때문입니다! 점잖은 건 맥주 때문이에요.니퍼즈랑 제가 오늘 점심을 같이 먹었거든요. 선생님, 제가 지금 얼마나 점잖은지 보세요.제가 가서 저 놈의 눈을 확 갈겨 줄까요?!”
“지금 바틀비를 두고 하는 말이라면, 안 돼, 터키. 오늘은 안 돼. 제발 주먹을 거두게."
나는 문을 닫았고, 다시 한 번 바틀비를 향해 갔다. 그러면서 나 자신의 운명을 또 한 번 자극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것이었다. 또 한 번 배반을 당하고 싶어서 온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러면서, 바틀비가 단 한 번도 사무실을 떠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실례지만 그건 선생님이 결정하실 일입니다. 제 생각에 그의 행동은 터키와 저에 비추어 보아도 아주 유별나고 실로 부당합니다. 하지만 한때의 변덕일 수도 있겠지요.”
“허, 이상하군.” 내가 외쳤다. “그렇게 생각이 바뀌었나? 이제는 그 친구를 아주 점잖게 말하는군.”
“다 맥주 때문입니다.” 터키가 소리쳤다. “점잖은 건 맥주 탓이에요. 오늘 니퍼즈와 점심을 같이 먹었거든요. 보십시오, 제가 얼마나 점잖습니까. 가서 그 눈을 쳐 줄까요?”
“바틀비를 두고 하는 말이겠지. 안 되네, 터키, 오늘은 안 돼.” 내가 대답했다. “제발 주먹을 내리게.”
나는 문을 닫고 다시 바틀비 쪽으로 걸어갔다. 내 운명을 불러들이는 유혹이 더 커진 느낌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반항을 당하고 싶어 몸이 달았다. 바틀비가 사무실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Bartleby,” said I, “Ginger Nut is away; just step round to the Post Office, won't you? (it was but a three minute walk,) and see if there is any thing for me.”
“I would prefer not to.”
"You will not?”
"I prefer not.”
I staggered to my desk, and sat there in a deep study. My blind inveteracy returned. Was there any other thing in which I could procure myself to be ignominiously repulsed by this lean, penniless wight?—my hired clerk? What added thing is there, perfectly reasonable, that he will be sure to refuse to do?
“Bartleby!”
No answer.
“Bartleby,” in a louder tone.
No answer.
"Bartleby,” I roared.
Like a very ghost, agreeably to the laws of magical invocation, at the third summons, he appeared at the entrance of his hermitage.
“Go to the next room, and tell Nippers to come to me.”
“I prefer not to,”
he respectfully and slowly said, and mildly disappeared.
“Very good, Bartleby,” said I, in a quiet sort of serenely severe self-possessed tone, intimating the unalterable purpose of some terrible retribution very close at hand. At the moment I half intended something of the kind. But upon the whole, as it was drawing towards my dinner-hour, I thought it best to put on my hat and walk home for the day, suffering much from perplexity and distress of mind.
“바틀비. 진저 넛이 나가고 없어서 부탁하는데, 잠깐 우체국에 들러서 나한테 우편물이 와 있는지, 알아봐주겠나?“
“안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안 가겠다는 말야?“
"그 편을 택하겠습니다.”
나는 비틀거리면서 내 책상으로 돌아왔고, 자리에 앉아, 곰곰이 생각했다. 맹목적인 적의를 다시금 느꼈다. 이 피골이 상접하고, 땡전 한 푼 없는 놈에게, 내가 고용한 직원에게, 수치스럽게 거절당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이놈이 가차 없이 거절하게 만들려면, 빈틈없이 합리적인 어떤 일을 더 시켜야 할까?
"바틀비!“
대답이 없었다.
"바틀비!“
더 큰 소리로 말했다.
“바틀비!”
나는 포효했다.
바틀비는 세 번 외워야 유령을 부를 수 있는 주문에 응답듯, 정말 유령처럼 자신의 은신처 입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옆방에 가서 니퍼즈에게 내가 부른다고 말해 줘.”
“안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그는 공손히, 천천히 말하고는, 가만히 사라졌다.
“좋았어, 바틀비.”
나는 엄정하고 침착한 어조로 말하는 것으로, 모종의 무시무시한 보복전이 곧 펼쳐질 거라는 불굴의 의지를 내보였다. 사실 그 순간엔, 그런 보복을 하겠다는 생각을 어느 정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녁 시간이 다가오면서, 오늘은 심히 당혹스럽고 고통스러운 생각에 시달렸으니, 그냥 모자를 쓰고 퇴근하는 게 상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바틀비,” 내가 말했다. “진저 넛이 자리를 비웠네. 우체국에 잠깐 다녀와 주겠나? (걸어서 겨우 삼 분 거리였다.) 내게 온 게 있는지 보고 오게.”
“그러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안 가겠다는 말인가?”
“그러지 않는 편입니다.”
나는 비틀거리며 내 책상으로 가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눈먼 고집이 되살아났다. 이 야위고 무일푼인 사내, 내가 고용한 직원에게 또 한 번 수치스럽게 퇴짜 맞을 방도가 없을까? 아주 합리적이면서 그가 틀림없이 거절할 만한 일이 더 없을까?
“바틀비!”
대답이 없었다.
“바틀비!” 더 큰 소리로 불렀다.
대답이 없었다.
“바틀비!” 나는 고함을 질렀다.
마법의 주문이 그렇듯 세 번째 부름에야, 그는 정말 유령처럼 은둔처 입구에 나타났다.
“옆방에 가서 니퍼즈에게 내게 오라고 전하게.”
“그러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그는 공손하고 느릿하게 말하고는 조용히 사라졌다.
“좋아, 바틀비.” 나는 조용하되 엄하고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무시무시한 응징이 코앞이라는 변치 않을 결의를 풍기는 어조였다. 그 순간에는 실제로 그럴 생각이 반쯤 있었다. 그러나 저녁 시간이 가까워 오는 데다 마음이 몹시 어지럽고 괴로웠으므로, 모자를 쓰고 그날은 걸어서 집에 가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thrusting his lean visage at me, and holding the door ajar, the apparition of Bartleby appeared, in his shirt sleeves, and otherwise in a strangely tattered dishabille, saying quietly that he was sorry, but he was deeply engaged just then, and—preferred not admitting me at present. In a brief word or two, he moreover added, that perhaps I had better walk round the block two or three times, and by that time he would probably have concluded his affairs.
Now, the utterly unsurmised appearance of Bartleby, tenanting my law-chambers of a Sunday morning, with his cadaverously gentlemanly nonchalance, yet withal firm and self-possessed, had such a strange effect upon me, that incontinently I slunk away from my own door, and did as desired.
But not without sundry twinges of impotent rebellion against the mild effrontery of this unaccountable scrivener. Indeed, it was his wonderful mildness chiefly, which not only disarmed me, but unmanned me, as it were. For I consider that one, for the time, is a sort of unmanned when he tranquilly permits his hired clerk to dictate to him, and order him away from his own premises.
피골이 상접한 그 몰골을 내게 들이밀고선, 살짝 열린 문을 잡은 채, 바틀비가 유령처럼 나타났다. 셔츠 바람에 누더기 같은 속옷 차림을 하고서.
"미안하지만 제가 지금 한창 하는 일이 있어서, 지금 당장은 선생님을 들여보내지 않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이 구역을 두세 번 돌아보는 게 어떠신가요. 그쯤 되면 제가 용무를 끝낼 것 같습니다.“
일요일 아침, 내 사무실에서 살고 있는 바틀비...그 예기치 못한 출현, 시체처럼 창백하면서도, 신사처럼 스스럼없으며, 확고하고 침착하기까지 한 모습. 그런 그의 모습에 어이없을 정도로 묘하게 주눅이 든 나는, 그의 말대로 사무실에서 슬금슬금 걸어 나왔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그 구역을 두세 차례 돌았다. 하지만, 이 형용모순의 필경사의 온순한 듯 뻔뻔한 태도에 반발심을 느끼면서도, 손 하나 까딱하지 못 하는 상황에 온갖 복잡한 괴로움까지 느끼지 않은 건 아니었다.
사실, 그의 놀라운 온순함이야말로, 날 무장해제시켰을 뿐만 아니라, 나의 남성성마저 거세시킨 것 같았다. 안 그런가? 자기가 고용한 직원한테 도리어 지시를 받고, 자기 사무실에서 나가라는 명령을 받는 경우라니, 그러는 동안 남성성은 잃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일요일 아침에, 셔츠 말고는 아무 것도 안 입고선 내 사무실에서 도대체 뭘 하고 있던 거지? 정말 꺼림칙해. 뭔가 못된 짓을 하고 있었을까? 필사를 하고 있었나? 아니, 이상하긴 해도, 부도덕한 친구는 아니잖아. 그리고 일요일에 일을 할리도 없고... 그가 안식일 예법을 어길 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아...
얼마 후, 나는 다시 사무실로 가서 문을 열었다. 바틀비는 사라지고 없었다. 사무실 안을 자세히 살펴보고서, 나는 알았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바틀비는 내 사무실에서 먹고 입고 잠을 자고 있었다는 것을.
…야윈 얼굴을 내밀고 문을 빼꼼히 연 채, 셔츠 바람에 기이하게 해진 평상복 차림의 바틀비라는 유령이 나타나, 미안하지만 지금은 한창 바쁜 일이 있어서 당장은 나를 들이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조용히 말했다. 그러면서 한두 마디를 덧붙여, 아마 이 구역을 두세 바퀴 돌고 오시면 그때쯤이면 볼일이 끝나 있을 거라고 했다.
일요일 아침, 내 법률 사무실에 세 들어 있는 바틀비라니, 전혀 짐작도 못 한 모습이었다. 송장 같은 신사다운 무심함에다 그러면서도 단호하고 침착한 그의 모습은 내게 너무도 기이한 작용을 하여, 나는 곧바로 내 사무실 문 앞에서 슬금슬금 물러나 시키는 대로 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 알 수 없는 필경사의 온순한 뻔뻔함에 대해 무력한 반항심이 여러 번 따끔거렸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실로 나를 무장해제시켰을 뿐 아니라 이를테면 사내다움마저 빼앗은 것은 주로 그의 놀라운 온순함이었다. 자기가 고용한 직원이 자기에게 지시를 하고 자기 사무실에서 나가라고 명령하는 것을 태연히 허락하는 사람은, 그동안은 일종의 사내다움을 잃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Will you tell me, Bartleby, where you were born?"
"I would prefer not to."
"Will you tell me any thing about yourself?"
"I would prefer not to."
"But what reasonable objection can you have to speak to me? I feel friendly towards you."
He did not look at me while I spoke, but kept his glance fixed upon my bust of Cicero, which as I then sat, was directly behind me, some six inches above my head.
"What is your answer, Bartleby?" said I, after waiting a considerable time for a reply, during which his countenance remained immovable, only there was the faintest conceivable tremor of the white attenuated mouth.
"At present I prefer to give no answer,"
“바틀비, 이리 와, 뭔가 시키려는 게 아니야. 그냥 자네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어.... 그래... 바틀비... 자네는 고향이 어딘가?“
"말하지 않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무엇이든 자네 자신에 대해 말해주겠어?“
"하지 않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나한테 말하지 않으려는 합당한 이유가 있는 거야? 난 자네에게 친근감을 느끼는데... ”
내가 말하는 동안, 바틀비는 날 보지 않고, 내가 앉아있는 곳 바로 뒤의 키케로 흉상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바틀비, 자네 대답은 뭐지?”
꽤 오랜 시간을 대답을 기다리던 내가 물었다. 그러는 동안 바틀비의 가늘고 하얀 입은, 보일락말락 살짝 벌어졌을 뿐, 표정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지금은 대답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바틀비는 자신의 은신처로 가 버렸다.
“바틀비, 자네는 어디서 태어났는지 말해 주겠나?”
“그러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자네 자신에 대해 무엇이든 말해 주겠나?”
“그러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하지만 내게 말하는 데 무슨 합당한 이의가 있겠나? 나는 자네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네.”
내가 말하는 동안 그는 나를 보지 않고, 내가 앉은 자리 바로 뒤, 내 머리 위 육 인치쯤 되는 곳에 놓인 키케로 흉상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자네 대답은 뭔가, 바틀비?” 한참을 기다리다가 내가 물었다. 그동안 그의 얼굴은 미동도 없었고, 다만 희고 가느다란 입이 아주 희미하게 떨릴 뿐이었다.
“지금은 대답하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The time has come; you must quit this place; I am sorry for you; here is money; but you must go."
"I would prefer not," he replied, with his back still towards me.
"You must." He remained silent.
Now I had an unbounded confidence in this man's common honesty. He had frequently restored to me sixpences and shillings carelessly dropped upon the floor, for I am apt to be very reckless in such shirt-button affairs. The proceeding then which followed will not be deemed extraordinary.
"Bartleby," said I, "I owe you twelve dollars on account; here are thirty-two; the odd twenty are yours.—Will you take it?" and I handed the bills towards him. But he made no motion.
"I will leave them here then," putting them under a weight on the table. Then taking my hat and cane and going to the door I tranquilly turned and added—
"After you have removed your things from these offices, Bartleby, you will of course lock the door—since every one is now gone for the day but you—and if you please, slip your key underneath the mat, so that I may have it in the morning. I shall not see you again; so good-bye to you. If hereafter in your new place of abode I can be of any service to you, do not fail to advise me by letter. Good-bye, Bartleby, and fare you well."
“바틀비, 시간이 됐어. 자넨 이곳을 떠나야 해. 여기 돈이 있네.“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자넨 가야한다니까.... 자네에게 지불할 급료가 12달러인데, 여기 32달러를 주겠네. 20달러도 자네 것이야.“
나는 그를 향해 지폐를 건넸다. 그는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돈, 여기 놓아두겠네. 그리고... 바틀비, 이 사무실에서 자네 물건을 옮긴 다음, 자네 열쇠를 문앞 깔개 아래에 넣어주게. 그래야 내가 아침에 열쇠를 찾을 수 있을 테니까. 난 다시는 자네를 보지 못할 거야. 잘 가게. 새 거처로 옮긴 후, 내가 도움이 될 만한 게 있으면 언제든 편지로 알려주게. 바틀비, 안녕, 잘 가게.“
그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았다. 폐허가 된 사원의 마지막 기둥처럼, 그는, 그가 아니라면, 텅 비었을 방의 한복판에, 말없이, 고독하게 서 있었다.
“때가 되었네. 자네는 이곳을 떠나야 하네. 안됐지만 어쩔 수 없어. 여기 돈이 있네. 그래도 가야 하네.”
“떠나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그는 여전히 내게 등을 돌린 채 대답했다.
“가야 하네.” 그는 말이 없었다.
나는 이 사람의 평범한 정직함을 한없이 믿고 있었다. 내가 이런 푼돈에는 몹시 무심한 편이라, 그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진 6펜스며 실링을 여러 번 주워 돌려주곤 했다. 그러니 이어진 내 조치는 별나게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바틀비,” 내가 말했다. “자네에게 밀린 급료가 12달러인데, 여기 32달러가 있네. 남는 20달러는 자네 몫이야. 받겠나?” 나는 지폐를 그에게 내밀었다. 그러나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럼 여기 두고 가겠네.” 나는 지폐를 탁자 위 문진 밑에 끼워 두었다. 그리고 모자와 지팡이를 들고 문으로 가서 태연히 돌아서며 덧붙였다.
“바틀비, 이 사무실에서 자네 물건을 다 치우고 나면, 지금은 자네 말고는 다들 퇴근했으니, 문을 잠가 주게. 그리고 괜찮다면 열쇠는 깔개 밑에 밀어 넣어 두게. 아침에 내가 찾을 수 있도록 말일세. 자네를 다시 보지 못할 걸세. 그러니 작별일세. 새 거처에서 내가 도울 일이 있거든 편지로 꼭 알려 주게. 잘 가게, 바틀비. 부디 잘 지내게.”
3
"Bartleby," said I, entering the office, with a quietly severe expression, "I am seriously displeased. I am pained, Bartleby. I had thought better of you. I had imagined you of such a gentlemanly organization, that in any delicate dilemma a slight hint would have suffice—in short, an assumption. But it appears I am deceived. Why," I added, unaffectedly starting, "you have not even touched that money yet," pointing to it, just where I had left it the evening previous.
He answered nothing.
"Will you, or will you not, quit me?"
I now demanded in a sudden passion, advancing close to him.
"I would prefer not to quit you," he replied, gently emphasizing the not. "What earthly right have you to stay here? Do you pay any rent? Do you pay my taxes? Or is this property yours?"
He answered nothing.
"Are you ready to go on and write now? Are your eyes recovered? Could you copy a small paper for me this morning? or help examine a few lines? or step round to the post-office? In a word, will you do any thing at all, to give a coloring to your refusal to depart the premises?"
He silently retired into his hermitage. I was now in such a state of nervous resentment that I thought it but prudent to check myself at present from further demonstrations. Bartleby and I were alone.
“바틀비... 난 정말 불쾌해. 바틀비.. 마음이 아파. 자네를 훨씬 더 좋게 봤었어, 자넨 신사라고 생각했었다고. 그래서, 어떤 미묘한 어려움에 처해 있어도, 약간 운을 떼기만 하면, 간단히 말해 하나의 가정이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었어. 그런데, 내가 잘못 본 것 같군.“
나는 정말로 놀라면서, 전날 놓아둔 돈이 그대로 그 자리에 있는 것을 가리켰다. 그리고 말했다.
“이럴수가! 자네 돈엔 아직 손도 대지 않았잖아! 와, 진짜 미치겠다. 날 떠날 거야, 안 떠날 거야! 대답해! 얼른!“
나는 화를 버럭 내면서, 그에게 바짝 다가가 다그쳤다.
“당신을 떠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그가 ‘않’이란 단어를 부드럽게 힘주어 말했다.
“아니, 도대체 무슨 권리로 여기 머물겠다는 거야? 집세를 내기를 하나? 세금을 내나. 이 사무실이 자네 거야?“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럼 이제라도 필사를 할 준비가 된 거야? 눈은 다 나았어?오늘 아침에 간단한 서류를 필사해주지 그래? 아니면, 몇 구절 대조하고 검토하는 걸 돕던가? 아니면 우체국에 좀 다녀오지? 그러니까 내 말은, 여길 떠나지 않겠다는 자네 뜻에 그럴만한 명분이 될 일을 하겠다는 거냐고?“
그는 말없이 자기 은신처로 물러났다.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신경이 곤두서 있었기 때문에, 더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편이 현명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무실엔 바틀비와 나 둘뿐이었다.
“바틀비,” 나는 조용히 엄한 표정으로 사무실에 들어서며 말했다. “나는 심히 불쾌하네. 마음이 아프네, 바틀비. 자네를 더 좋게 생각했었어. 자네가 신사다운 기질의 사람이라서 어떤 미묘한 난처함 앞에서도 살짝 암시만 해 주면, 요컨대 하나의 가정만 있으면 족하리라고 여겼네. 하지만 내가 속았나 보군. 아니,” 나는 꾸밈없이 흠칫 놀라며 덧붙였다. “자네는 저 돈에 아직 손도 대지 않았잖은가.” 나는 전날 저녁 놓아둔 바로 그 자리의 돈을 가리켰다.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를 떠나겠나, 안 떠나겠나?”
나는 갑자기 격분해 그에게 바싹 다가서며 따졌다.
“당신을 떠나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그가 ‘않’을 부드럽게 힘주어 대답했다. “대체 무슨 권리로 여기 머물겠다는 건가? 집세라도 내나? 내 세금을 내나? 이 건물이 자네 것이기라도 한가?”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제 다시 일을 할 준비가 됐나? 눈은 나았나? 오늘 아침 간단한 서류를 필사해 줄 수 있겠나? 아니면 몇 줄 대조를 도와주거나 우체국에 다녀오겠나? 한마디로, 이곳을 떠나지 않겠다는 거절에 그럴싸한 명분이라도 입힐 만한 일을 무엇이든 하겠나?”
그는 말없이 은둔처로 물러났다. 나는 신경질적인 분노로 가득해서, 지금은 더 이상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편이 신중하겠다고 생각했다. 바틀비와 나는 단둘이 남았다.
"What are you doing here, Bartleby?" said I.
"Sitting upon the banister," he mildly replied. I motioned him into the lawyer's room, who then left us.
"Bartleby," said I, "are you aware that you are the cause of great tribulation to me, by persisting in occupying the entry after being dismissed from the office?"
No answer.
"Now one of two things must take place. Either you must do something, or something must be done to you. Now what sort of business would you like to engage in? Would you like to re-engage in copying for some one?"
"No; I would prefer not to make any change."
"Would you like a clerkship in a dry-goods store?"
"There is too much confinement about that. No, I would not like a clerkship; but I am not particular."
"Too much confinement," I cried,
"why you keep yourself confined all the time!"
“바틀비, 여기서 뭘 하는 거지?”
“난간에 앉아 있어요.”
나는 몸짓으로 그에게 변호사 사무실로 들어가라고 했고, 이윽고 변호사는 우릴 두고 나갔다.
“바틀비, 사무실에서 해고된 뒤에도, 견물 현관을 이렇게 차지하고 있으면 어떻게 해? 자네가 나한테 얼마나 큰 시련을 안겨주고 있는지 아나?“
그는 대답이 없었다.
"이제 둘 중의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어. 자네가 조처를 취하든지, 아니면 자네한테 조처가 취해지든지. 그런데 어떤 일을 하고 싶은 거지? 어딘가 취직해서 다시 필사 일을 하고 싶은 거야?“
“아니요. 나는 어떤 변화도 겪고 싶지 않습니다.”
“포목상 점원 일은 어떤가?”
“싫어요. 한곳에 틀어박혀 있어야 하는 점원일이잖아요. 하지만 까다롭게 가리는 건 아닙니다.“
“틀어박혀 있다니! 자넨 계속 틀어박혀 있잖아!
“여기서 뭘 하고 있나, 바틀비?” 내가 말했다.
“난간에 앉아 있습니다.” 그가 온순하게 대답했다. 나는 그를 변호사 사무실로 들어오게 했고, 그 방의 주인은 우리를 두고 자리를 비웠다.
“바틀비,” 내가 말했다. “사무실에서 해고되고도 복도를 계속 차지하고 있어서 자네가 내게 큰 고초를 안기고 있다는 걸 아는가?”
대답이 없었다.
“이제 둘 중 하나일세. 자네가 무언가를 하든지, 자네에게 무언가가 행해지든지. 그래,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누군가를 위해 다시 필사를 하고 싶은가?”
“아니요. 어떤 변화도 원치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포목점 점원 자리는 어떤가?”
“그건 너무 갇혀 지내는 일입니다. 아니요, 점원은 싫습니다. 하지만 까다롭게 가리는 건 아닙니다.”
“너무 갇혀 지낸다니!” 내가 외쳤다. “자네는 늘 스스로 갇혀 지내지 않나!”
“Bartleby, this is Mr. Cutlets; you will find him very useful to you.” “Your sarvant, sir, your sarvant,” said the grub-man, making a low salutation behind his apron.
“Hope you find it pleasant here, sir;—spacious grounds—cool apartments, sir—hope you’ll stay with us some time—try to make it agreeable. May Mrs. Cutlets and I have the pleasure of your company to dinner, sir, in Mrs. Cutlets’ private room?”
“I prefer not to dine to-day,” said Bartleby, turning away.
“It would disagree with me; I am unused to dinners.”
So saying he slowly moved to the other side of the inclosure, and took up a position fronting the dead-wall.
“How’s this?” said the grub-man, addressing me with a stare of astonishment.
“He’s odd, aint he?”
“I think he is a little deranged,” said I, sadly. “Deranged? deranged is it? Well now, upon my word, I thought that friend of yourn was a gentleman forger; they are always pale and genteel-like, them forgers. I can’t help pity ’em—can’t help it, sir.” … “I cannot stop longer. Look to my friend yonder. You will not lose by it. I will see you again.”
"바틀비. 이 사람은 친구야. 자네에게 아주 도움이 될 그런 친구야.“
앞치마 차림의 사식업자가 바틀비에게 깊이 머리를 숙였다.
“전 나리의 하인입니다. 여기가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네요. 뜰도 좋고, 방도 시원하니까-한동안 저희와 머물러 주세요. 자, 오늘 식사는 뭘 드시겠습니까요?“
사식업자의 호들갑에 바틀비는 고개를 돌렸다.
“오늘은 식사를 하고 싶지 않아요. 내 속에 맞지 않을 것 같아서요. 난 정찬에 익숙하지 않거든요.“
그렇게 말하면서, 바틀비는 천천히 안뜰 맞은편으로 갔다. 그리고는 막힌 벽을 마주 보고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사식업자가 놀라서 내게 물었다.
“뭡니까? 저 사람. 좀 이상하네요?”
나는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정신이 약간 나간 것 같네요...”
“정신이 나갔다고요? 정신이? 아이고, 이것 참, 쯧쯧. 난 당신 친구가 문서위조자라고 생각했거든요. 위조자 양반들은 늘 얼굴이 백짓장하고, 어딘지 모르게 품위가 있어 보이거든. 그래서 측은해요. 측은한 마음이 안 들 수가 없어....“
“더는 머무를 시간이 없네요. 내 친구를 부탁합니다. 그러면 손해 볼 일은 없을 거예요.“
“바틀비, 이쪽은 커틀릿 씨일세. 자네에게 아주 쓸모가 있을 걸세.” “제가 나리의 종입니다, 나리, 종이고말고요.” 사식업자가 앞치마 뒤로 깊이 인사를 하며 말했다.
“여기가 마음에 드시길 바랍니다요, 나리. 넓은 마당에, 서늘한 방들이 있지요. 한동안 우리와 함께 지내시길, 지내기 편하시도록 힘써 보겠습니다. 커틀릿 부인과 제가 부인의 방에서 나리를 저녁 식사에 모시는 영광을 누려도 되겠습니까?”
“오늘은 식사를 하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바틀비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
“탈이 날 것 같습니다. 저는 정찬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그는 느릿느릿 울타리 친 마당의 반대편으로 가서 막다른 벽을 마주 보고 섰다.
“이게 어찌 된 겁니까?” 사식업자가 놀라 눈을 크게 뜨고 내게 물었다.
“좀 이상하지요?”
“정신이 약간 어떻게 된 것 같습니다.” 내가 슬프게 말했다. “정신이 어떻게 됐다고요? 어쩐지, 그래서였군요. 나는 당신 친구가 신사 같은 위조범인 줄 알았어요. 위조범들은 늘 창백하고 점잖아 보이거든요. 가엾은 마음이 들지 않을 수가 없지요, 나리, 어쩔 수가 없습니다.” … “나는 더 머물 수 없네. 저기 있는 내 친구를 잘 보살펴 주게. 손해 보지 않을 걸세. 또 보러 오겠네.”
The yard was entirely quiet. It was not accessible to the common prisoners. The surrounding walls, of amazing thickness, kept off all sounds behind them. The Egyptian character of the masonry weighed upon me with its gloom. But a soft imprisoned turf grew under foot. The heart of the eternal pyramids, it seemed, wherein, by some strange magic, through the clefts, grass-seed, dropped by birds, had sprung.
Strangely huddled at the base of the wall, his knees drawn up, and lying on his side, his head touching the cold stones, I saw the wasted Bartleby. But nothing stirred. I paused; then went close up to him; stooped over, and saw that his dim eyes were open; otherwise he seemed profoundly sleeping. Something prompted me to touch him. I felt his hand, when a tingling shiver ran up my arm and down my spine to my feet.
The round face of the grub-man peered upon me now.
"His dinner is ready. Won't he dine to-day, either? Or does he live without dining?"
"Lives without dining," said I, and closed his eyes.
"Eh!—He's asleep, aint he?"
“With kings and counselors," murmured I.
나는 벽의 아랫부분에, 묘하게 움츠린 자세로 소진되어버린 바틀비를 보았다.
무릎을 웅크리고, 차가운 돌에 머리를 갖다댄 채, 모로 누워 있었다. 그러나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가, 그에게 바싹 다가갔다.
그의 침침한 눈은 감겨 있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가 깊은 잠을 자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를 만져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래서 그의 손을 만지는 순간, 저릿저릿한 전율이 팔을 타고 올라왔다가,척추를 타고, 발까지 내려갔다.
사식업자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 분 식사 준비했는데... 오늘도 식사를 안 하시려나... 아니면 밥을 안 먹고 사는 사람인가요?“
“밥을 안 먹고 살지요.”
그렇게 말하며, 나는 그의 눈을 감겨주었다.
"어라? 잠이 드셨네?“
“제왕과, 만조백관과 함께...”
마당은 아주 고요했다. 일반 죄수들은 들어올 수 없는 곳이었다. 놀랄 만큼 두꺼운 사방의 벽이 바깥의 모든 소리를 막아 주었다. 이집트풍의 석조 건축은 음울하게 나를 짓눌렀다. 그러나 발밑에는 갇힌 보드라운 잔디가 자라고 있었다. 영원한 피라미드의 심장 같았고, 어떤 기이한 마법에 의해 갈라진 틈새로 새들이 떨어뜨린 풀씨가 싹튼 듯했다.
벽 밑동에 기이하게 웅크린 채, 무릎을 끌어당기고 모로 누워 머리를 차가운 돌에 댄 야윈 바틀비가 보였다. 그러나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가 그에게 바싹 다가가 몸을 숙였다. 흐릿한 눈이 뜨여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깊이 잠든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무언가가 그를 만져 보라고 나를 부추겼다. 그의 손을 만지자 찌르르한 전율이 팔을 타고 올라 등줄기를 거쳐 발끝까지 내달렸다.
사식업자의 둥근 얼굴이 이제 나를 들여다보았다.
“식사 준비가 됐는데요. 오늘도 안 드시려나? 아니면 밥을 안 먹고 사는 분이신가?”
“밥을 안 먹고 살지요.” 나는 말하고 그의 눈을 감겨 주었다.
“어? 주무시는 거죠?”
“제왕들과 고문관들과 함께…” 나는 중얼거렸다.
The report was this: that Bartleby had been a subordinate clerk in the Dead Letter Office at Washington, from which he had been suddenly removed by a change in the administration. When I think over this rumor, I cannot adequately express the emotions which seize me. Dead letters! does it not sound like dead men? Conceive a man by nature and misfortune prone to a pallid hopelessness, can any business seem more fitted to heighten it than that of continually handling these dead letters, and assorting them for the flames?
For by the cart-load they are annually burned. Sometimes from out the folded paper the pale clerk takes a ring:—the finger it was meant for, perhaps, moulders in the grave; a bank-note sent in swiftest charity:—he whom it would relieve, nor eats nor hungers any more; pardon for those who died despairing; hope for those who died unhoping; good tidings for those who died stifled by unrelieved calamities. On errands of life, these letters speed to death.
Ah Bartleby! Ah humanity!
그 소문은 당연히 바틀비에 관한 것이다. 내 사무실에 오기 전, 바틀비는 워싱턴의 ‘배달불능 우편물 취급소’의 말단 직원이었다. 그러다, 행정부의 물갈이로, 갑자기 해고되었다는 것이다. 이 소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를 사로잡은 감정을, 나는 지금도 적절히 표현할 수가 없다.
배달불능 우편물! Dead Letter! 죽은 사람이란 소리처럼 들리지 않는지?
천성적으로, 아니면 재난을 겪은 후, 활기가 사라져 절망에서 헤어 나오지 못 하는 사람을 상상해보라. 그 사람이 죽은 편지들만 줄곧 다루면서, 그것들을 분류해 불에 태우는 것만큼 그 활기 없는 절망을 더욱 심화하는 일이 또 있을까?
죽은 편지들은 매년, 대량으로 소각되었다. 그 핏기 없는 직원은 이따금씩, 접힌 편지지 속에서, 반지를 발견할 때가 있다. 그 반지를 꼈어야 할 손가락은, 이제는 어쩌면, 무덤 속에서 썩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 자선 헌금으로 보내어진 지폐 한 장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그 돈이 구제할 사람은, 더 이상 먹을 수도, 굶을 수도 없다. 절망하며 죽어갔을 그 사람들에게 용서를.... 희망에 현혹되지 않고 죽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구제될 수 없는 재난에 질식당해 죽은 사람들에게 희소식을...인생을 구할 사명을 가졌던 이 편지들은, 다만 득달같이 달려 죽음을 향했으니... 삶의 심부름에 나선 편지들이 죽음으로 질주하다니 ..
아, 바틀비, 아, 인간성이여!
소문은 이러했다. 바틀비는 워싱턴의 배달불능 우편물 취급소에서 말단 직원으로 일했는데, 행정부가 바뀌는 바람에 갑자기 쫓겨났다는 것이다. 이 소문을 곱씹을 때면 나를 사로잡는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길이 없다. 배달불능 우편물이라니! 죽은 사람처럼 들리지 않는가? 천성이거나 불운 탓에 창백한 절망에 빠지기 쉬운 사람을 떠올려 보라. 이런 죽은 편지를 끊임없이 다루며 불태울 것을 가려내는 일만큼 그 절망을 부추기기에 알맞은 일이 또 있겠는가?
해마다 수레째 그것들이 불태워진다. 때로 창백한 직원은 접힌 종이 속에서 반지를 꺼낸다. 그 반지를 끼었을 손가락은 어쩌면 무덤 속에서 썩어 가고 있으리라. 가장 빠른 자선으로 보낸 지폐 한 장, 그것으로 구제받았을 사람은 이제 먹지도 굶지도 않는다. 절망 속에 죽은 이들을 위한 용서, 희망 없이 죽은 이들을 위한 희망, 구제받지 못한 재난에 숨 막혀 죽은 이들을 위한 좋은 소식. 삶의 심부름을 나선 이 편지들은 죽음을 향해 내달린다.
아, 바틀비! 아, 인간이여!